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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5년09월07일 15시08분 ]


피아니스트 백건우(69)는 7일 오전 서울 신문로 문호아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러시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 이야기를 꺼내면서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좋은 작품은 어떤 면에서 다 비슷하죠. 라흐마니노프의 전기(어린 시절)를 보면 그런 느낌이에요. 자기가 자랐던 지방, 할머니 손 잡고 성당에서 들었던 종교 음악 등의 요소가 (서정적인 음색으로 유명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2번) 2악장에 녹아 있어요."

그러면서 코스타리카에서 라흐마니노프의 손녀를 만난 이야기를 덧댔다. "그녀가 초청해 (집으로) 찾아갔는데 라흐마니노프가 영상을 틀어주더라고요. 손녀가 노는 모습을 보는 라흐마니노프를 접했죠. 2악장을 보면…. 그렇게 따뜻한 사랑이…. 그처럼 자기 자신을 그린 작품이 많지는 않아요. 저로서는 행복한 작품이죠."

백건우 역시 자기 자신이 음악에 묻어나는 연주자다. '건반 위의 구도자'라는 수식처럼 정중동(靜中動)의 미학으로 피아노 연주에 평생을 바쳤다.

한국 나이로 일흔살, 만 9살 때 국립 교향악단과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한지 60년, 1961년 뉴욕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한지 55년.

여러모로 특별한 올해 백건우의 여정은 여전히 신중하면서도 바삐 이어진다. 지난 6월 드레스덴 필하모닉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4번을 연주했다. 또 10월24일 울산에서는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11월2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게르리예프가 이끄는 뮌헨 필하모닉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가 예정됐다.

이달에는 리사이틀을 열고 한국에서 듣기 힘든 러시아 작곡가 스크랴빈의 '24개의 전주곡'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소나타 1번'을 들려준다. 러시안 솔로 레퍼토리 등정에 나서는 셈이다.

 
백건우는 그간 걸어온 삶에 대해 "사실 음악이라고 하는 게 긴 여행이기 때문에 어느 시기를 딱 잘라서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물론 경력에 있어 중심이 어디 있겠지만, 음악적 여행에 있어서는… 반환점이 있다는 건 아닙니다."

-이번 리사이틀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성한 건가요? 러시아 작곡가 음악이 중심인데요.

"제가 한국에서 연주할 때는 어떤 작품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서 결정할 때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그간 메시앙, 베토벤 소나타 32곡을 연주했죠. 이번에는 특히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1번이 주인공이에요. 오래전부터 러시아 음악을 좋아해왔는데 저게는 이 곡이 교향곡 같은 느낌입니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 느낌을 피아노에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죠. 그런 스케일의 깊이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이 곡을 들을 수 있느 기회는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을 겁니다. 스크랴빈을 하게 된 이유는 스위스 페스티벌에서 이 곡을 연주해줄 수 있겠냐고 부탁이 왔기 때문이죠. 스크랴빈은 후기 작품을 많이 연주했는데 초기 작품도 할수록 좋더라고요."

-지금까지 연주해온 프로그램을 보면 유명한 작품에 치우치지 않아요. 독특한 작품도 많죠.

"프로그램을 짤 때 작곡가의 세계를 생각하려 합니다. 물론 한 작가를 정확히 전달하는 것은 쉽지 않죠. 워낙 유명한 곡은 잘 알려져 있고, 그렇지 않은 곡들은 너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경우가 있으니까요. 무소르그스키가 대표적인 케이스죠. '전람회의 그림'은 잘 알려져 있는데 나머지 17곡은 안 알려져 있죠. 우리에게 숙제가 많이 남아 있다고 봅니다."

 
-러시아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올해 러시아의 음악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라벨의 전곡으로 데뷔(백건우는 1972년 뉴욕 링컨센터에서 라벨의 독주곡 전곡을 연주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했죠. 라벨의 음악은 조형적이고 세련된, 프랑스의 독특한 음악인데, 그의 곡을 집중적으로 하다 보니 어떤 면에서 그거랑 반대인 인간적이고 서민적이고 조형적이지 않은 음악을 필요로 하게 되더라고요. 자연적으로 러시아 음악으로 향하게 된 무엇이 있지 않나 해요. 우리 한국인과 센티멘털이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렇게 여러 면으로 러시아 음악에 접급하다보니 사랑하게 됐고, 한동안은 러시아의 악보란 악보는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다 구해봤어요(웃음)."

-1990년대 라흐마니노프 음반을 내셨는데 20~30년이 지난 지금과 그 때와 라흐마니노프를 대하는 관점이나 해석이 달라진 것이 있나요?

"첫째 제가 한창 그 곡을 연주할 때는 러시아에 가지를 못했죠. 그래서 뉴욕에서 간접적으로 영화나 문학을 통해서 접근했고요. 이후 러시아에서 17번인가, 18번을 연주했는데 아마 그런 차이가 있을 겁니다. 다만 제 느낌은 제 나이에 와서는… 음악을 전보다 편하게 다를 수 있게 됐다는 점이 예전과 가장 큰 차이죠. 예전에는 이것으로 증명을 하고 설득을 해야 했는데 지금은 전보다 더 즐길 수 있게 됐어요."

-선생님이 연주하신 음반도 편안하게 듣는 편인가요(웃음)?

"잘 안들어요(웃음)."

-본격적으로 연주를 시작하신 지 55년인데 이번 리사이틀에서 그런 의미를 담아서 연주하실 건가요?

"모르겠어요. 음악에서 무엇을 추구했는데…. 제 인생을 되돌아보면, 처음 제가 외국에서 공부할 때 시작이 참 힘들었죠.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외로움이 힘이 된 것 같아요. 외로움을 느껴봐야 딴 사람의 존재를 더 느낄 수 있고 그 가치를 알게 돼죠. 음악이라는 것은 마음과 마음의 만남이기 때문에 거기서 더 절실한 음악이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 시기를 거쳐서 제 와이프(배우인 윤정희)를 만났고 연주생활도 활발히 시작된 것 같아요. 한 인생을 음악하고 살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오랜 세월 끝에 음악과 더 가까워지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도 생기고요. 전보다 음악을 즐기는데 너무나도 다행이에요."

-피아노 연주가 체력적으로 힘든데, 나이 들면서 부담은 없나요? 음악을 여정에 비유했는데 앞으로의 행선지는 어디로 생각하십니까?

"육체적으로는 아직까지 부담은 없어요. 그리고 늘 그렇게 생각해왔지만 피아노 레퍼토리는 무한해요. 제 나이에 맞는 좋은 작품들이 너무나 많아요. 단지 그 곡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래서 저는 그런면에서는 걱정을 안 해요(웃음)."

-구체적으로 작곡가 이름을 말해줄 수 있나요?

"프랑스, 스페인…. 근데 예전에 그 곡을 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에요. (같은 곡이라도) 그 나이에 맞는 비전이 있죠. 계속 연습하는 이유가 계속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때문이에요. 제 연주에 만족을 못해 더 발전하기 위해서 이 작업을 계속 할 겁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만 9세 때 모습(사진=빈체로)

-60년 전 독주회 사진이 여기 있는데요. 피아노 앞에 앉아 계시네요(웃음). 정확히 9세 반 때죠. 그 때 어떤 곡을 연주하셨나요?

"아버지가 시킨 곡을 연주했죠. '그리그 협주곡'은 기억나는데 이것저것 연주했어요. 어렸을 때 많은 걸 접한 게 도움이 많이 됩니다."

-이번 리사이틀 앙코르곡으로 무엇을 연주하실 지 알려줄 수 있나요?

"그간 알려주기 힘들죠(웃음). 그런데 대곡을 치고 나서 앙코르곡을 고르기가 쉽지 않아요. 본래 앙코를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본 프로그램 곡을 음미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앙코르에서 그런 부분이 깨지기 때문이죠. 저는 본 프로그램 곡을 음미하면서 청중이 음악회를 떠나기를 바라거든요. 앙코르 곡으로 다른 분위기의 곡을 연주하면 메인 프로그램 이미지가 금방 사라져 유감이죠."

-선생님은 소년의 감수성과 구도자의 마음을 동시에 가진 분이라고 생각해요. 피아노 연주를 할 때나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나요?

"저는 음악을 하려면 마음이 깨끗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솔직해야겠죠.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음악의 소리는, 악기를 통해 나가는 소리는 속일 수 없어요. 좋은 음악을 하려면 정말 진실성이 있어야 하죠. 진심으로 음악을 파고들어야 하고요. 거기에 정말 진실된 메시지를 전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은 불행히도, 쉽게 이야기해서 포장된 연주가 많아요. 그런 것은 음악을 위해서는 좋은 게 아니죠."

이날 사회를 본 피아니스트 겸 클래식음악평론가 김주영은 "올해 저도 스크랴빈의 '24개의 전주곡' 도전을 계획 중인데 백건우 선생님 연주를 듣고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으면 포기하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정중동의 자세로 신중하지만 조심스럽고 한발짝씩 고전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백 선생님의 행보는 의미가 있다"며 "특히 올해 레퍼토리는 평소 접하지 못한 것이라 더 특별하다"고 말했다.

서울 공연 22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서울 공연 전후로 17일 오후 7시30분 천안예술의전당 대공연장, 18일 오후 8시 구리아트홀 코스모스대극장, 19일 오후 7시 군포시문화예술회관 수리홀, 23일 오후 8시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5만~13만원(서울). 빈체로. 02-599-5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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