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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5년09월24일 15시08분 ]
왕들이 메신저 쓰는 기발한 설정
'조선왕조실톡' 단행본도 나와 인기
왕들의 일화에 빠져 역사서 탐독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필’이 오면 바로 일을 저지르고 보는 사람이 있다. ‘서울대 출신의 미녀 작가’로 유명한 ‘무적핑크’ 변지민(26)의 지난 행적을 살펴보니 후자에 속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근 마포구 홍대에 있는 와이랩 만화카페에서 변 작가를 만나 확인해보니 역시나 예감이 맞았다. 변 작가는 “꽤 충동적”이라며 “웹툰 작가로 데뷔한 게 대표적인데, 먼저 일을 저지르고 수습(?)하는 타입”이라고 했다(그 수습은 모범생(?)답게 매우 계획적이고 성실했다.)

요즘 화제의 웹툰이자 최근 단행본이 출간되자마자 교보문고 ‘역사/문화’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조선왕조실톡’도 계획 없이 시작한 작품이다.

'조선왕조실톡’은 조선의 왕들이 메신저를 사용한다는 기발한 설정 하에 왕들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역사툰’. 허구가 아닌 실록에 근거한 내용으로 일반 독자 뿐만 아니라 역사서 독자들, 나아가 자녀들의 국사실력을 올리고 싶어하는 학부모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이 웹툰은 또 MBC에브리원의 ‘웹툰히어로-툰드라쇼’에서 동명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방영 중이다.

변 작가는 “애초 계획하던 작품이 잘 풀리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던 중 그냥 재미삼아 페이스북에 (지금보다 단순한 형태의) 한 컷 혹은 두 컷 만화로 만들어 매일 올렸다”며 “작품 공개 5일째 포털사이트에서 연락이 왔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희한하게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에서 뭔가 일을 저지르게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네이버에 난생 처음 웹툰을 올린 것도 서울대 수시전형 합격자 발표가 나기 3일 전이었다. 당시 그는 중학교 때부터 콘텐츠 공부에 욕심을 냈던 자신을 불현듯 떠올렸고 바로 네이버 도전만화에 작품을 올렸다. 업로드한지 4개월 만에 연재의뢰를 받으면서 2009년 당시 최연소 웹툰 작가가 됐다. 당시 그의 나이 20살이었다.

“어릴 적부터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게 생기면 깊게 파고들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타인과 공유하는 것도 즐겼다.” 그의 좌우명도 "재미있는 게 이기는 거다"이다.

변지민 작가의 '조선왕조실톡' 이미지(사진=와이랩) 2015-09-21

그렇게 재미있게 즐기다보니 중학교 시절부터 블로그를 운영해 ‘ 파워블로거’ 인증마크를 받았으며, 당시 썼던 글을 모아 ‘고3생존비기’(2010)를 출간하기도 했다. 고등학생이 돼서는 UCC공모전에 끊임없이 출품해 40여 개 상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이 그에게는 “학업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기도 했다.

보통 충동적 행동은 실수나 실패로 이어지기 십상. 변 작가의 충동적 행동이 주목할 만한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이렇듯 평소 창작을 즐기는 생활습관이 뒷받침된 덕분으로 보였다. 모범생 특유의 성실함에 완벽주의 기질도 한 몫 한 듯하다.

네이버에 ‘조선왕조실톡’을 1주일에 2회 연재 중인 그는 “관련 자료를 한 1000페이지는 읽어야 2주일 버틴다”며 “제일 분한 게 이만하면 자료조사 다 됐겠지, 구멍이 없겠지 하고 작품을 완성했는데, 나중에 제가 그 사람을 오해했다는 것을 깨닫는다든지, 더 재미있는 자료를 찾게 될 때”라고 밝혔다. 그는 “정말 짜증이 치민다”며 “이미 업데이트된 원고를 뜯어고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어떤 단어가 마음에 안 들 때도 있고, 이 사람 성격에는 이런 이모티콘을 쓰지 않았을 거 같을 때도 있다. 그럼 무조건 고쳐야 한다. 못 고치면 잠도 안 오고, 못 산다. 완벽주의? 있을지도 모르겠다.”

변 작가는 지난 2009년 ‘실질객관동화’로 데뷔해 대학에서 우연히 농사를 짓게 된 경험을 소재로 한 ‘경운기를 탄 왕자님’(2012), ‘실질객관영화’(2013)를 발표했다.

- '서울대 미녀 엄친아’ 작가라는 수식어로 불리는데, 어떤가?

“글쎄. 특별히 불편하지는 않다. 또 연대나 고대, 홍대 등 좋은 학교 나온 웹툰 작가도 있고. 미대를 다니다보니까 수업 중에 배운 플래쉬나 3D툴을 실전에 바로 적용할 수 있어서 많이 도움이 된다.”

- 조선왕조실톡이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극중 ‘사관’으로 카메오 출연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왜 작가가 출연해야하나 싶어 불만스러웠는데 뒤돌아보니 즐거운 투정이었다. 배역은 제가 무조건 눈에 안 띄는 역할을 달라고 했다. 워낙 베테랑 연극배우들과 대선배들이 많이 출연해 제가 그분들 사이에서 연기를 하면 튈 거 같고, 너무 창피할 거 같았다(그는 수염도 붙이고 나온다). 막상 서울에서 문경 세트장까지 오가고, 내려가서도 2개 신 찍으려고 5시간씩 기다리는 일정이라 하루가 다 간다. 그런 부분이 힘들긴 한데, 배우들 연기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마치 최초의 시청자라는 느낌이랄까? 내가 썼던 대사를 저렇게 말하는구나, 저렇게 육화되는구나, 관복도 직접 입어보니까 그림 그릴 때 도움이 된다. 어린 시절 좋아한 ‘안녕 프란체스카’에 나왔던 이두일 선생님, 김경식 선생님을 직접 뵙게 된 비현실적인 현실도 신기하다.”

변지민 작가의 '실질객관영화' 2015-09-21

- 역사는 평소 좋아하던 과목이었나? ‘조선왕조실톡’을 하게 된 계기는?

"‘경운기를 탄 왕자님’을 그릴 때 채소가 맞는지 야채가 맞는지 확인할 일이 있어 조선왕조실록을 뒤져본 적이 있다. 당시 세종대왕이 배추 상태가 안 좋다고 화냈다는 대목을 보고 우리가 알던 성군이 겨우 배추 때문에 화낸다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그렇게 왕들의 일화를 즐겨 읽다가 친구들 만날 때 수다 소재로 풀어놓곤 했다. 그러다 조선시대 왕위 계승사인 ‘왕과 아들’이란 역사서를 읽고 본격적으로 흥미를 느끼게 됐다. 국사책에서 달달 외웠던 위화도회군이 가장이 목숨을 부지하기위해 선택한 일이라고 생각하니 이성계 태조의 성격이 나오더라. 세종이 고기를 좋아한다거나 어린 시절 공부하지 말라는 아버지 태종의 훈계에 삐쳤다는 기록은 세종을 달리 보게 해줬다. 그래서 캐릭터를 잡고 그걸 바탕으로 왕의 업적을 설명하니 더 알기 쉽고 재밌었다.”

- 조선왕조실록에 나온 인물들 중에서 (현재 기준) 가장 애착가는 왕은 누구인가?

“매주 다른 왕들을 조명하다보니 그때 그때 다르다. 최근에는 세종대왕이 가장 좋았고, 선조가 답답했다. 둘 다 고집이 셌던 왕이지만 세종은 그 고집을 밖으로 향하게 해 다양한 위업을 달성하는 추진력으로 삼았다면 선조는 그 고집이 자기 안으로 향했던 것 같다. 불안감 때문에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을 검열하고 충성을 재확인하려 들었으니까. 심지어 자기 자식인 광해군마저 의심했으니 무척 안타깝다.”

- 유명동화나 영화를 패러디한 ‘실질객관동화’나 ‘실질객관영화’, 조선왕조실록을 자기화한 ‘조선왕조실톡’ 등 작품들이 기존의 것을 자기만의 시각으로 해석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패러디를 하려면 어떤 분야를 잘 알거나 자기주관이 뚜렷해야 할 것 같은데…

“고집은 엄청 셌다. 엄마가 고집불통이라고 하셨다. 남의 눈치도 잘 안 본다. 마감하다가 학교에 늦으면 아예 학교를 안 갔다. '지금은 이걸 할테야' 라고 생각하면 무조건 이 일이 우선이다. 교수님이 처음에는 매우 걱정하시다 요즘은 그냥 '허허' 하신다.

책이나 영화는 넓게 보기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반복해 본다. 또 어릴 적부터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다. 나만의 노트 만들기를 즐겼는데, 노트도 공산품을 그대로 쓰기보다 색종이를 사다가 직접 그림을 그린 뒤 그걸 붙여 나만의 노트로 만든 뒤 거기에 일기를 비롯한 모든 것을 기록했다. 마치 정조가 ‘일성록’에 모든 것을 다 기록했듯이 말이다(인터뷰를 하던 중에도 휴대폰 메모창을 열어놓고 틈틈히 기록했다). 그렇게 기억에 남은 것을 뿌려놓으면, 언젠가 그걸 가져다가 작품으로 만들게 되더라. ‘조선왕조실톡’도 페이스북에 올리기 전인 2012~2013년경 조선왕조실록을 주제로 3컷 만화를 그린 적이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 웹툰 작가 변지민을 있게 한 문화상품을 꼽는다면?

"‘먼나라 이웃나라’빼고 난생 처음 읽은 만화가 엄마가 학교에서 압수해온 ‘명탐정 코난’이었다. 이런 세계가 있구나 싶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읽은 판타지 소설 ‘12국기’는 소설의 세세한 설정, 장대한 역사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나도 언젠가 나만의 세계를 만들고 싶었다. 세 번째는 유튜브 클립영상으로 본 일본의 개그맨 라멘즈의 공연 영상이다. 두 사람이 미대 출신이었는데, 자기들 개성이 묻어나는 극을 써서 자신들이 직접 만든 소도구로 표현하는데 부럽고 멋있더라. 그 세 개가 합쳐져 지금의 제 작품 스타일이 만들어진 거 같은데, 세계관이 큰 이야기, 고전이나 역사를 받아들이되 제 식으로 해석해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또 그걸 보여줄 때 억지로 지어내기보다 신데렐라가 실제로 살아있다면 썼을법한 대사라든지, 임금님들이 메신저를 하면 이런 모습이겠지 하고 마치 창문을 열고 들여다보는 듯한 리얼함을 선호하는 것 같다."

변지민 작가의 '경운기를 탄 왕자님'(사진=와이랩) 2015-09-21

- 앞으로 웹툰 창작 말고 해보고 싶은 게 있나?

“지금 하는 작업이 끝나려면 집중해야 해서 다른 생각은 없다. 설령 ‘조선왕조실톡’을 완결해도 스핀오프도 가능하고, 또 왕 뿐 아니라 신하들 이야기도 해보고 싶다. 지금은 양념 수준으로 나오는데 조광조라든지 나중에 재상들로 정도전, 유승룡도 다루고 싶다. 왕실의 여인 이야기도 하고 싶고. 혹자는 고려사는 안하냐고 묻는데 만약 인연이 닿는 이야기가 있으면 해봐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제가 세계사 중에서는 이집트와 예술사를 좋아한다. 물론 이건 훗날 이야기다.”

- 엄친아는 어떻게 컸는지 미래의 학부모로서 궁금하다.

“공부하라는 얘기는 안하셨다. 제가 자존심이 세서 알아서 하는 타입이었다. 한글은 초등학교 입학 직전깨우쳤는데, 저보다 한 살 어린 사촌동생이 명절날 친척들 앞에서 책 읽는 것을 보고 자극받아서 그랬다더라. 엄마 말로는 제가 혼자 방에서 바닥을 치면서 나는 돌머리라고 자책하며 울었다더라. 중학교 때는 성적도 우수했지만 참 많이 놀았다. 당시 제가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를 좋아했는데, 그걸 하고 싶어서 엄마와 딜(deal)을 했다. 엄마가 시험성적이 상위 10%에 들면 한 달 정액권을 끊어준대서 점수를 잘 받기 위한 온갖 방법을 다 강구했다. 암기 잘하려고 오리고 붙이고 색칠하고 했는데, 그 자체가 공작 수업 같아서 재미있었다. 성적이 오르니까 살기도 편하더라. 제가 뭘 해도 주위 어른들이 긍정적으로 봐 줘서 만화책도 살 수 있고 게임도 할 수 있었다. 이 시기 해보고 싶은 것은 실컷 다 했다.

- 외교관처럼 성적우수생이 주로 선호하는 직업을 염두에 뒀다가 웹툰 작가가 됐다. 미술도 뒤늦게 시작했던데.

“미술에 대한 편견이 있잖나. 미술하면 굶어죽는다고. 저도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고 부모님도 특별히 제 편견을 고쳐주지 않았다. 사실 엄마가 광주에서 미술교사를 하셨다(나중에 교육부로 이직하면서 상경했다). 유치원 다닐 때 엄마가 저를 조퇴시키고 어딘가 데려갔는데, 첫해 광주비엔날레가 열린 전시장이었다. 그 때 어린 애가 보기에 끔찍한 전시가 많았는데 엄마가 그냥 다 보게 해주셨다. 미술은 돌이켜보면 늘 제 한 켠에 있었다. 반에서 그림 잘 그리는 애로 불렸고 미술대회 나가서 상도 타고 그랬다.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은 고1 때 담임선생님 덕분이다. 선생님 권유로 미술영재학급 시험을 치르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 나중에 엄마가 제가 스스로 “미술하고 싶다고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고 하시더라."

- 팔찌가 눈에 띈다. 핑크색의 전통 매듭 모양 팔찌인데, 무적핑크란 필명으로 ‘조선왕조실톡’을 그리는 작가의 장식품으로 잘 어울린다.

“홍대 액세서리점에서 구입했다. 평소 즐겨 착용한다.”

- 서울대 수시전형 면접 당시 나왔던 질문을 똑같이 해보겠다. 20대인 현재 잘나가는(?) 웹툰 작가인데, 40살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머나먼 섬에서 1년간 살고 돌아오겠다고 했는데, 아직까지는 변함이 없다. 다녀와서 평생 그려본 적 없는 일상툰을 그려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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